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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 살수대첩을 이끈 고구려의 총사령관, 당시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의 군대를 완전히 박멸시켜 나라가 흔들리도록 한 장수에 대한 모든 것

21세기 인물

by Experienceer 2024. 9. 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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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안녕하세요 춤추는 나무입니다. 오늘은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특히, 살수대첩을 승리로 이끌어 보급병까지 합쳐 300만명의 수나라 군대를 그만의 특별한 기습과 매복으로 적들을 섬멸했습니다. 수나라가 처음 처들어왔을 때, 작은 성인 '요동성' 하나를 한 달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답답한 수양제는직접 고구려로 내려왔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결국 당시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직접 정복하러 간 우중문 군대는 보급의 부재로 인해 후퇴 중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에 의해 군대의 99%가 모두 사살되고, 고작 2700명만 살아돌아가는 치욕을 겪었습니다. 을지문덕의 후손부터 시작해서 그에 관한 미스테리와 업적, 그리고 유명한 을지문덕이 우중문에게 보낸 시를 소개해드리면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

     

    을지문덕 후손, 출생, 가문

     역사적인 기록은 없지만, 역사학자들이 추측하기를 을지문덕의 성은 본래  을(乙)씨였지만, 을지문덕 때  을지(乙支)씨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돈(頓)씨로 비뀌었다고 합니다. 현재 목천 돈씨는 2015년 기준으로 85명 정도있으며, 충청남도 동남구 목천읍과 평안남도 평양시에 많이 있다고 합니다. 1935년에 동아일보에서 '김준연의 답사기'를 살펴보면 을지문덕 묘의 위치와 그 근처에 거주하고 있는 돈씨를 인터뷰해서 이런 돈씨가 을지문덕의 후손 성씨라는 추측이 나온 듯 싶습니다. 을지문덕의 16세 후손들이 묘청의 난 때 큰 활약을 보여서 돈씨라는 성을 받았다고 역사기록에는 나와있습니다. 

     

    목천 돈씨의 원시조인 을지문덕

     

     을지문덕의 탄생과 출생에는 많은 전설이 있습니다. 그는 평양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평남의 한 마을의 '석다산'이라는 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무술을 익혔다는 전설도 있고, 평남의 불곡산 동굴에서 무술 훈련을 연마했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습니다. 

    석다산의 을지문덕

     

    을지문덕 미스테리

    을지문덕은 이상할 정도로, 출생과 묘, 가문과 후손에 관한 내용이 단 한 개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에 관한 내용이라고는 살수대첩 뿐이고 살수대첩 이후에 그의 정치생활에 대한 언급과 패배만 있을 뿐 실제로 명확하게 나와있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분명히 한 나라의 일개 장수가 아닌 최고사령관까지의 위치에 올랐을 것이며, 외교 협상을 진행할 정도면 분명히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있을텐데 없는 것을 매우 사람들은 의심스러워했습니다.

    을지문덕 그림

     

     사람들은 합리적인 추측으로 을지문덕과 '바보 온달'이 같은 인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나름 일리가 있는 게 두 인물 모두 같은 평원왕 시기로 평원왕의 딸(평강공주)와 온달(=을지문덕)이 결혼해서 측근인 을지문덕(=온달)을 곁에 두어서 왕권을 강화했다는 얘기조차 나옵니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을지문덕 업적

     을지문덕은 고구려 - 수나라 전쟁에 최초로 기록이 되어있으며, 참고로 이때는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해 한창 기세등등했을 시절입니다. 612년에 평양성을 향해서 나아간 수양제(수나라의 2대 황제)는 을지문덕에 의해 요동성부터 막히고, 계절이 바뀌어 겨울이 찾아오자 급한 마음에 수양제는 30만명의 별동대를 함락시킬 계획을 내게 됩니다.(겨울에는 식량 부족과 추운 날씨로 인해 방어보다 공격하는 군대가 훨씬 힘들기 때문에 수양제가 급해졌습니다.)

     

    수나라의 고구려 침략

     

     수나라는 이러한 묘책으로 평양성 주변으까지는 갔으나 100일 정도의 식량밖에 있지 않아서 결국 후퇴하고 돌아오던 중에 을지문덕의 계략에 넘어갑니다. 이때 수나라의 별동대는 우중문과 우문술이 지휘했으며, 을지문덕은 거짓 항복을 통해 그들을 안심시키고 적진 안으로 들어가 식량 부족으로 인한 적진의 사기와 상태가 나빠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후에 여수자우중만이라는 시와 함께 우중문에게 후퇴를 권합니다. 그렇게 후퇴하는 수나라의 뒤를 쳐서 을지문덕의 지휘하에 수나라는 전멸하게 됩니다. 이떄 살아남아서 돌아간 2700명은 창이나 무기를 챙길 겨를도 없이 정말 목숨만 부지하고 살아돌아왔다고 합니다. 을지문덕은 한 대국을 넘어뜨린 것도 대단하지만, 을지문덕은 당시 최고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사대주의에 의하면 '왕'의 나라인 수나라에게 그런 참패를 남겨주었다는 것에 의미가 큽니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

     

     그는 614년에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당시 수나라와의 해상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해준 장수인 '고건무'와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을지문덕은 항상 우리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에게는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반면, 위 중국에게는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며 반대로 남쪽(신라와 백재)한테는 방어적이고 중국에게는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수나라가 3번의 차례를 걸쳐 영토 확장을 꾀했으며 고구려를 이토록 전시 상황으로 이끌었으니, 이참에 상국인 북중국을 아예 멸망시켜버리자는 계획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고건무(나중의 고구려 27대 왕인 영류왕)는 사대주의에 익숙했고, 고구려 보수 세력은 강대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을지문덕의 을파의 의견을 묵살했고, 당시 왕인 영양왕은 고건무의 편을 들었습니다. 

     

    고건무(=영류왕)

     

     하지만, 곧 을지문덕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수나라는 고구려와의 무리한 전투로 인해 3차 전쟁 이후 4년 안에 망하게 됩니다. 을지문덕의 안목을 통해 만약 대중국을 쳤다면, 고구려는 더욱 역사 속에 오래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외교 전략에 대한 논쟁은 보수 세력인 고건무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이 패배로 인해 역사 속에서 이름이 사라졌을 거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을지문덕 시(여수장우중문시)

    “귀신같은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했고(神策究天文)
    오묘한 꾀는 땅의 이치를 깨우쳤네(妙算窮地理)
    싸움에서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戰勝功旣高)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이르노라(知足願云止)”

     

     을지문덕은 적장인 우중문에게 보내는 시로 원문은 한문으로 작성되어 있는 5언 4구의 한시입니다. 이 시는 얼핏 보면 적장을 칭찬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반어법으로 그를 비꼬는 것입니다. 이 시는 을지문덕이 거짓 항복을 하고 적진에 들어가 적진의 군사들의 굶주린 상태를 확인한 후 다시 고구려 군대로 도착해서 우중문에게 보낸 시로 우중문은 을지문덕한테 속았다는 사실을 이 시를 읽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을지문덕의 군대

     

     원래 동아시아세 병법을 말할 때는 인화, 지리, 천문을 언급한다고 합니다. 이 시는 특이하게 반대의 순서로 얘기하며, 이는 반어법과 관련이 있는 요소인 것 같습니다. 이 시는 하늘의 이치라는 언급을 통해 '천문'을 먼저 말하고, 땅의 이치라는 언급을 통해 '지리'의 부분이 있습니다. 다음은 '여론'이라는 뜻을 가진 '인화'가 다음에 나와야하는데 싸움에서 이긴 공을 언급해 당시의 이미지인 여론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그 다음 문장에' 당신 같은 높은 공을 가진 사람'도 포기할 줄은 알아야 한다며, 을지문덕 자신이 더 대단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을지문덕 동상

     

     이때 '천문'의 부분인 하늘의 이치를 다 했다는 것은 비꼬는 것으로 사실 우중문이 공격했을 떄의 시점은 한여름으로, 싸우기 최악의 시기입니다. 전염병은 돌고, 체력은 바닥인 군사들의 사기는 최저일 것은 안 봐도 뻔합니다. '지리' 부분애서 땅의 이치를 꺠우친 것도 반어법으로, 평양을 곧바로 치기 위해서 과하게 진격한 그의 행보를 비판하는 것입니다. 

     

    상무대에 위치한 을지문덕 장군의 동상

     

    을지문덕은 비록 역사적인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고구려 장수입니다. 하지만, 그의 살수대첩만 보더라도 고구려를 살린 영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의 행보는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 후손들에게 모범이 될 것임에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고구려의 영웅 을지문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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