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는 19세기 빈 분리파를 이끈 미술의 선구자였습니다. 특히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는 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입니다. 고작 20대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그 누구보다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경지에 오른 당대 최고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그의 생애부터, 키스에 얽힌 이야기, 가격, 소장처까지 모든 것을 알아봅시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바움가르텐이라는, 오스트리아 빈 근처의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직업은 금 세공사였는데요, 그의 작품 전반적으로 금색이 많이 쓰이게 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집은 그리 풍족하지 못했고, 클림트는 14살 학교마저 그만두게 됩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클림트의 미술 실력을 높이 산 친척의 도움으로 1876년 빈 국립 응용미술학교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이전까지는 열악한 환경 탓에 받지 못했던 '진짜' 미술 교육을 받게 된 클림트는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이후 1886년 학교를 졸업하고 공방을 차리는데요, 공방을 차린 이후 몇 년이 지났을까요. 그 짧은 시간 안에 클림트는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누구보다 높은 경지의 미술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때 나이가 고작 20대 후반이니 정말 천재였죠.
그러나 젋은 나이에 높은 경지에 도달한 클림트는, 기존의 미술 화풍에 다소 반발심을 느끼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이제까지 내려져오던 것들을 자신은 너무 쉽게 그려낼 수 있으니까, 뭔가 새로운 것을 그리고 싶어진 것이죠.
바로 이때부터, 구스타프 클림트의 '빈 분리파'가 시작됩니다.
빈 분리파는 이름 그대로 과거와의 '분리' 오직 하나만을 추구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그냥 옛날과 다르기만 하면 돼! 뭔가 신선하기만 하면 돼!" 이런 느낌의 집단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빈의 유명한 작곡가는 많이 알고 있지만 (ex.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정작 빈의 화가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그만큼 1800년대 후반 당시에도 빈은 예술적으로 많이 발전한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구스타프 클림트와 빈 분리파 덕분에 빈은 미술에 있어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빈 분리파의 작품을 한 개 봐볼까요?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입니다.
그림을 완전히 잘 아시는 분이 아닐지라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겁니다. 이런 느낌을 받으셨다면, 이게 빈 분리파고 이런 느낌이 구스타프 클림프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주시면 충분합니다.
인상주의, 사실주의, 고전주의...미술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이런 '~주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쉽게 말해서 이런 것들은 그 작품을 어떤 '분위기'로 그렸는지 표현하는 용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대상이 주는 순간적인 인상에 집중했으면 인상주의, 최대한 사실적으로 대상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면 사실주의와 같은 식입니다.
그렇다면 구스타프 클림트는 어떤 주의에 속했을까요?
그는 '상징주의' 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징주의란, 추상적인 개념을 '상징'을 통해 표현하는 회화 양식입니다. 말이 어렵지만, 사실 우리는 상징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고 일상생활 중에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를 문자에 쓰곤 합니다.
상징주의 미술도 똑같은 방법입니다. 다만 그림이다 보니 그림 속의 여러 요소들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상징주의는 현실이 아닌, 추상적인 대상에 집중하게 된 것일까요? 이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위에서 구스타프 클림트가 19세기 활동했던 화가라고 했었죠? 19세기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져 인간성의 황폐화, 물질주의 등 여러 부작용 역시 나타난 시대였습니다.
이로 인해 화가들은 부조리한, 암울한 현실에 염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의 것이 아닌 보다 형이상학적이고 가치 있는 추상적인 것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상징주의가 시작되었고, 구스타프 클림트 역시 19세기에 활동한 화가로서 이러한 상징주의의 대표 화가로 자리매김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그림,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입니다. <키스>와 관련된 여러 정보, 소장처, 가격, 그림에 대한 해석, <키스>에 얽힌 이야기까지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키스>의 원제가 다른 제목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원제는 <연인>이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이 작품을 처음으로 전시회에 선보일 때 <연인>이라고 이름 붙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연인>에서 자연스레 <키스>로 이름이 뒤바뀌어 알려지게 된 것인지, 그 전말이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한 가지 가설은 관람객들이 작품 속 남자와 여자의 키스 장면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에 매혹되어 이 작품을 <키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키스> <연이> 둘 다 맞는 제목이지만, <키스>가 더 유명하게 알려져 있는 제목인만큼, 우리는 <키스>라고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습니다.
현재 <키스>는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이 작품이 나오자마자 즉시 구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작품이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구매 결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는 사실 미완성 상태로 첫 전시가 이루어졌었습니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이 작품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열광했고, 오스트리아 정부 역시 그 미술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소장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미완성 상태의 작품임에도 즉시 구매하여 정부 차원에서 소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키스>의 가격은 얼마일까요?
당시 <키스>가 오스트리아 정부에게 팔렸을 때 판매가격은 25,000 크라운으로 현대 미국 달러로 치면 24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한화로는 3억 2000만 원의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 정도면 사실 싼 가격이었어요.
2006년에 판매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르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은 1억 3,500만 달러에 팔렸기 때문입니다. 한화로 치면 1,800억입니다. 대략 100년의 세월차가 있다고는 해도, <키스>는 약 600배나 싸게 팔렸던 셈입니다.
이렇듯 <키스>는 그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까지도 가장 가격이 비싼 그림 중 하나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선 이 작품의 주제는 '사랑'입니다. 애초에 제목부터 '키스'니 당연하겠죠. 구스타프 클림트가 상징주의 화가라고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그가 이번 작품에서 표현하려고 했던 추상적인 주제는 바로 '사랑'이 되겠습니다.
우선 클림트는 굉장히 장식적인 '패턴'을 이 작품에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을 보아도 이런 화려한 패턴이 많이 등장합니다.
자, 다시 작품을 가져와보면 남성의 옷은 '사각형' 패턴, 여성의 옷은 '원'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별을 반영하여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사각형은 남성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원은 여성성, 모성 등을 상징합니다.
또한 작품 전반에 '금'이 굉장히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위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버지가 금 세공사였다고 했었죠. 자연히 클림트는 <키스> 뿐만 아니라 그의 다양한 작품에 금이라는 특이한 재료를 자주 사용합니다. 금은 이 작품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불어넣으며, 그 자체만으로 황홀한 아름다움을 전달합니다.
남성의 얼굴을 보이지 않고, 여성의 표정만으로 이 두 커플 사이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손을 잡고, 목을 휘감고 있으며 남성은 여성의 얼굴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고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의 키스를 거부하지 않는 모양새며, 이러한 조심스러운 자세와 여성의 따뜻함, 기쁨이 보이는 표정을 통해 그들 사이의 따뜻하게 빛나는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에, 남성과 여성은 굉장히 위태로운 장소에 함께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들이 앉아있는 곳은 꽃밭이지만, 낭떠러지입니다. 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따뜻한 '시간'과 맞지 않게, 위험한 '공간'에 존재하는 모순입니다. 클림트는 왜 이러한 모순을 작품에 표현했을까요?
바로 다음에 나올 구스타프 클림트의 특별한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수많은 연인을 둔 바람둥이 화가였습니다. 그가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실제로 14명의 여인들이 찾아와 그의 사생아를 데리고 있다며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여성편력을 보여주듯 그의 작품에는 '여성'을 주제로 하거나 그린 작품이 굉장히 많습니다. <키스> 역시 그중 하나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구스타프 클림트가 이렇게 많은 여성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음에도, 오직 정신적인 사랑만을 추구한 진정한 연인 1명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플뢰게.
구스타프 클림트는 유일하게 이 여성과는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 않고 오직 플라토닉한 정신적 사랑을 추구합니다. 사실 에밀리 플뢰게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처제였습니다. 그렇기에 클림트는 섣불리 단순한 관계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 다시 <키스>로 돌아가봅시다. 아까 <키스>의 남성과 여성은 사랑의 순간에 굉장히 위험한 장소인 낭떠러지에 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키스>의 모델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남성은 구스타프 클림트 자신, 여성은 에밀리 플뢰게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오직 상상만 했던 그녀와의 사랑의 순간을 이렇게 '모순'으로써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 즉, 그녀에게 키스 한번 조차 실제로는 한 적이 없지만, 만약 그렇게 그녀와 사랑의 순간을 나눈다면 너무나 황홀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험하고 깨지기 쉬운 순간일 것이라는 것을, 그림에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알아본 인물은 구스타프 클림트였습니다. 그의 독특한 예술적 철학, 당대의 보수적인 화풍을 거부한 자신감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얻고 그의 작품에서 예술적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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