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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브린 세계 9위 부자 구글 창립자의 모든 것

21세기 인물

by 떠있는고래 2024. 9. 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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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브린은 구글을 창업한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전 세계 부자 순위 9위에 달하는 1304억 달러(약 140조 원)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갖고 있습니다. 과연 그는 금수저여서 이렇게 성공했을까요? 그의 어린 시절, 구글을 창업한 과정부터 그의 재산까지 모든 것을 알아봅시다.


1.세르게이 브린의 어린 시절

세르게이 브린 (출처: 포브스)

 

세르게이 브린은 '세르게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 출신입니다. 그는 1973년 러시아(구 소련)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6살인 1979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현재, 세르게이 브린은 미국의 가장 거대한 기업 중 하나인 구글의 창립자입니다.

 

그의 가족은 왜 이민을 떠났을까요? 그리고 세르게이 브린이 미국으로 떠난 이후 어떤 사건이 그가 구글을 설립하도록 만들었을까요? 하나씩 시간순으로 알아봅시다.

 

그의 아버지는 마이클 브린, 어머니는 제니아 브린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유대인입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반유대적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했습니다. 실제로 러시아의 공산당 간부들은 유대인의 대학 입학을 막아 높은 사회 계급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마이클 브린은 수학을 전공했는데, 모스크바 주립 대학의 수학과에 입학하는 것 역시 유대인에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른바 '가스실'이라는 별명이 붙은 별도의 방에서 입학시험을 치르는 등 대학 입학에 있어 명백한 차별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마이클 브린은 자신의 실력으로 대학에 합격해냈습니다.

 

이후 그는 단 3개 과목을 제외하고는 대학 시절 내내 전 과목 A를 받을 정도의 훌륭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는 대학원에 진학할 기회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브린은 이후 러시아의 중앙 계획 기관 GOSPLAN의 경제학자가 되었습니다.

 

세르게이 브린의 어머니 제니아 브린은 어땠을까요? 그녀 역시 대학 입학 시 차별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모스크바 주립대학에 입학했고 기계공학,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명망 있는 연구소인 러시아 석유 및 가스 연구소에서 일했습니다. 

 

이렇듯 세르게이 브린의 부모님은 높은 수준의 지식인 계층에 속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러시아에서 이방인이었고 지속적인 차별을 받았습니다. 이에 마이클 브린은 이민을 결정합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수학 콘퍼런스였습니다. 그곳에서 영국, 미국, 독일의 동료 학자들과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고 공산주의 러시아 밖의 다른 나라들의 '자유'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게 세르게이 가족은 1979년, 세르게이 브린이 6살이던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납니다.

 

세르게이 가족은 미국 메릴랜드 주에 정착했습니다. 그들은 중하류층이 주로 살았던 동네에서 집을 임대하고,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2,000달러를 대출받아서 차를 샀습니다. 즉 세르게이 브린은 금수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현재, 세계 9위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 두시고, 이야기를 계속해봅시다.

 

세르게이 브린은 메릴랜드 주 애데피의 페인트 브랜치 몬테소리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도 어린 시절 몬테소리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은 이 둘 사이의 흥미로운 공통점입니다.

 

세르게이 브린은 어린 나이였고 기초적인 영어밖에 몰랐지만,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곱셈 퍼즐 등 수학 게임을 즐겨했습니다. 훗날 이를 돌아보며 세르게이 브린은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몬테소리 학교의 환경이 자신의 창의성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세르게이 브린이 엄청난 천재로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몬테소리 학교의 학교장 바르샤이는 그를 똑똑한 아이로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세르게이는 계속 성장하여 엘리너 루스벨트 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 그는 이때 1년 치의 대학 학점을 미리 따두어 훗날 메릴랜드 대학을 3년 만에 졸업했습니다. 그의 영특함이 엿보이기 시작하는 대목입니다.

 

메릴랜드 대학에서 세르게이 브린은 컴퓨터 과학과 수학을 전공했으며 1등을 도맡아 했습니다. 이런 그의 훌륭한 성적 덕택에 특별히 장학금을 받고 명문 대학인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됩니다. 

 

스탠퍼드의 교수들은 세르게이 브린을 자신감 넘치는 학생으로 기억합니다. 세르게이 브린은 무작정 교수를 찾아가서 방문을 열고 질문을 던지는 학생이었습니다. 

 

스탠퍼드에 다니던 시절 세르게이 브린의 관심사는 '데이터 마이닝'이었습니다. 이는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 결론을 추출해내는 학문입니다. 아무래도 그의 데이터 마이닝에 대한 관심사가 구글의 개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지 생각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스탠퍼드의 1995년 봄, 드디어 래리 페이지를 만납니다. 


2.구글이 만들어진 과정: 래리 페이지와의 만남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출처: Academy of Achievement)

 

세르게이 브린은 래리 페이지를 만난 후 무려 이틀 동안 계속해서 지적 논쟁을 벌였습니다. 래리 페이지는 세르게이 브린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습니다. 특히 래리 페이지의 아버지, 어머니 모두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일종의 컴퓨터 과학자 집안이었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검색 엔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기존에 나와있던 검색 엔진이 사용자의 요구에 따라 보여주는 문서를 판단하는 기준은 '키워드의 반복 횟수'였습니다. 

 

예를 들어, '오렌지'를 검색했을 때 이 단어가 20번 나온 문서면 적절한 문서라고 생각하여 보여준 것이죠. 그런데 이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만약 글 작성자들이 단순히 자신의 글을 상위노출하기 위해서 오렌지를 아무런 맥락 없이 20번, 30번을 반복해서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결과적으로 실제 사용자들의 요구와는 관련이 없는 문서들만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이러한 검색 엔진의 한계를 분명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웹페이지 간의 '링크'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사실 이 개념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예시를 들어 설명해볼게요.

 

아직 학생이시거나, 논문을 써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충 인용을 많이 받은 논문이 훌륭한 논문으로 인정받는다는 건 알고 계실 거예요.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A라는 논문이 100번, B라는 논문이 5번 인용되었다면 학자들은 A 논문을 더 좋은 논문으로 생각하고 더 많이 사용한 것이니까요.

 

이게 바로 구글에서 사용한 웹페이지 간의 '링크' 개념과 동일합니다. 즉 어떤 웹페이지가 유용하다면, 다른 웹페이지들에서 이 웹페이지를 많이 '인용', 또는 '링크' 했을 거라는 것입니다. 이를 자세히 설명하면 글이 너무 어려워져서, 대충 논문에서 인용하는 거랑 비슷하구나~정도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이후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1997년, google.com이라는 웹사이트 도메인 이름을 등록하며 역사적인 구글의 첫 등장을 알립니다. 참고로, Google이라는 이름은 10의 100 제곱을 뜻하는 'googol'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무수히 많은 웹페이지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죠.

 

그러나 아직까지 그들이 회사를 설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비유하자면 google이라는 상품을 만들어놓은 상태였고, 이를 큰 회사들에 판매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들은 그들의 발명품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합니다. 여타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의 시작이 그랬듯이, 차고를 임대하고 가족, 친구들에게서 돈을 빌려 회사를 차립니다. 

 

구글의 항해는 순탄했습니다.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 창립자인 앤디 베히톨스하임에게서 10만 달러의 엔젤투자를 받아 사업을 성공적으로 시작합니다. 

 

이후 구글은 빠르게 성장했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검색 광고'를 통해 어마어마한 매출을 창출합니다. 참고로 검색 광고란, 여러분이 어떤 사이트에 들어갈 때마다 뜨는 여러 광고들, 그 광고를 클릭할 때마다 구글은 돈을 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구글은 2004년 8월 16일, 주식시장에 상장합니다. 상장하자마자 주가는 주당 85달러에서 100달러로 급등했으며 시가총액 230억 달러에 도달했습니다. 구글 주식을 갖고 있던 회사 직원들은 하룻밤 만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고작 27살에 억만장자가 됩니다. 


3.세계 9위 부자 세르게이 브린

세계 부자 순위 (출처: Forbes Real Time Billionaire)

 

포브스에서 제공하는 'Forbes Real Time Billionaire' 사이트에 따르면, 2024년 9월 2일 현재 세르게이 브린의 자산은 1304억 달러(한화로 약 140조 원)로, 그는 세계 9위 부자입니다. 

 

러시아 출신 이민자에, 미국의 중하류증 가정집에서 살았다는 배경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그의 재산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요?

 

질문이 조금 추상적이었죠. 이렇게 세르게이 브린을 검색해서 찾아보실 정도의 분들이라면,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거나 적어도 구글과 같은 IT기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일 겁니다.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같은 인물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재산에 압도되곤 합니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의 예산은 656조 원입니다. 우리나라 예산의 1/5에 달하는 재산을 한 사람이 갖고 있다는 것이, 상상이 되시나요?

 

어떤 분들은 내가 이렇게 노력한다고 한들 과연 저런 재산을 가질 수는 있을까, 저렇게 어마어마한 성공을 한 사람이 있는데 과연 내가 이번 삶에 어떤 성공을 한다고 한들 저 정도 수준에 미칠 수는 있을까 하는 좌절감에 빠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봅시다. 세르게이 브린이 과연 처음부터 자신이 140조 원의 재산에, 세계 9위의 부자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었나요?

 

그는 그저 데이터 마이닝에 관심 있던 대학생이었으며, 자신의 연구를 통해 불편했던 검색을 개선하여 새로운 디지털 세상에 기여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노력과 성취가 하나씩 쌓이다 보니 지금에 다다른 것이죠. 

 

누군가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세르게이 브린 역시 미국의 몬테소리 학교에 다니던 초등학생이었고, 밤새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대학생이었으며, 실패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차고'에서 기업을 창업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학생이었고, 대학생이었으며, 취준생일수도 직장인일수도 있습니다. 삶이 흘러가는 과정 중 한 단계에 서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단계단계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 앞에 주어진 과제 딱 1개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 보세요.

 

왜냐고요? 세르게이 브린 역시 정확히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현재의 자리에 다다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합시다.


오늘 알아본 인물은 세르게이 브린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 성장과정, 래리 페이지를 만나 구글을 창업하기까지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말씀드린 세르게이 브린과 같은 위대한 성공을 거둔 인물에 대해 생각할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에서 많은 인사이트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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