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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 주사위는 던져졌다 로마 역사상 최고의 천재 1편

21세기 인물

by 떠있는고래 2024. 9. 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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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는 던져졌다. 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2000년의 로마 제국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로마 제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 중 하나였는데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어떤 업적을 이뤘길래 로마의 영웅으로 인정받는 것일까요? 그의 생애, 업적, 명언 '주사위는 던져졌다'까지 모든 것을 알아봅시다.

 

(그의 명언 '주사위는 던져졌다'에 대해서는 2편에서 다룰 예정이니, 명언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바로 2편으로 가주시면 됩니다!)


1.율리우스 카이사르 이름 파헤치기

율리우스 카이사르 (출처: Pexels)

 

우선 그의 이름부터 살펴봅시다. 그의 풀네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입니다. 이렇게 로마식 라틴어 이름을 보면 문득 뭐가 성이고 뭐가 이름인지 궁금해지시지 않나요?

 

간단하게 말하면 '가이우스'가 이름, '율리우스'는 성입니다. 그럼 '카이사르'는 뭐냐고요? 주로 계급이 높은 귀족 가문에게만 붙었던 '가문명'이에요.

 

예를 들어, 로마의 위대한 인물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보면 단어가 2개밖에 없죠? 말한 대로 가이우스가 이름, 마리우스가 성입니다. 그는 평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가문명이 붙지 않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다시 돌아가봅시다. 로마식 작명법에서 중간 이름인 '율리우스'는 씨족명, '카이사르'는 가문명입니다. 이걸 구분할 때는 씨족에서 여러 가문이 세분화되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정확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카이사르의 이름을 볼 때면, 귀족 가문 출신이라 이름이 3개 단어로 구성되어 있겠거니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줄리어스 시저'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분명 동일 인물인데,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이 이름의 차이는 뭘까요? 

 

간단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언어였던 라틴어대로 읽은 것이고, 줄리어스 시저는 영어로 읽은 것입니다.

 

Julius Caesar가 원어 표기인데요, 영어로 읽으면 대충 줄리어스 시저로 발음이 될 것 같지 않나요?

 

그런데 카이사르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굉장히 영향력이 큰 이름입니다.

 

첫 번째, 영어로 7월을 의미하는 단어는 July죠. 어? Julius Caesar의 'Julius'와 비슷하지 않나요? 네, July는 정확히 카이사르의 영어식 이름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혹성탈출>의 주인공 '시저' (출처: Freepik)

 

두 번째,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유명한 영화인 <혹성탈출>입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은 침팬지 '시저'죠. 네, 이젠 슬슬 예상이 되실 겁니다. 줄리우스 '시저'에서 따온 것이죠.

 

러시아 황제 '차르'

 

세 번째, 러시아 황제를 부르는 명칭은 '차르'였습니다. 이 역시 Caesar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Caesar를 언뜻 러시아 느낌 나게 읽으면 차르로 읽어지지 않나요?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죽었지만, 오늘날에도 그 이름은 우리 곁에서 살아숨쉬고 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2.율리우스 카이사르 업적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마인으로 칭송받습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일을 했길래 그런 것일까요?

 

1.로마 영토 확장

단순히 '영토 확장'이라고만 하면 뭔가 별 것 없어 보이지만, 당시가 '고대' 로마 시대였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무려 중세 시대가 오기도 전이었습니다.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로마가 있던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현재의 유럽은 거의 전 세계나 마찬가지였어요. 전 세계를 카이사르가 정복한 겁니다.

 

카이사르는 우선 갈리아 전쟁으로 굉장히 유명합니다. 여기서 갈리아란 현재의 프랑스 지방을 의미해요. 그는 6년 만에 갈리아 전역을 정복하고 로마의 영토로 편입합니다.

 

또한 카이사르는 게르마니아(독일), 브리타니아(영국), 갈리아 벨티카(벨기에) 지역 역시 정복에 성공합니다. 그의 전쟁 덕분에 로마는 20세기 당시의 '식민지'와 비슷한 개념인 '속주'를 늘리게 됩니다. 갈리아 속주, 게르마니아 속주라고 하면 로마가 프랑스 식민지, 독일 식민지를 둔 것이죠.

 

로마는 카이사르 덕분에 거대한 로마 제국으로 향하는 길이 활짝 열립니다. 또한 새로운 영토의 정복은 새로운 농경지, 광물, 무역로 등의 개척으로 이어졌습니다. 

 

정리하자면,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 내에만 머무르던 '로마 공화정'에서 유럽 전역을 지배하는 '로마 제국'으로 탈바꿈한 것은 적어도 영토의 확장 측면에 있어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공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2.루비콘 강 도하

루비콘 강은 로마의 신성한 경계선이었습니다. 당시 외국으로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장군들은, 로마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군사들 없이 로마 시내로 들어와야 했습니다. 로마 근처는 아니지만, 루비콘 강은 그 상징적인 경계로서 모든 장군들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 완전히 무장을 해제했습니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기원전 49년, 루비콘 강을 건넙니다. 자신이 이끌던 병사들을 모두 데리고서요! 현대의 쿠데타를 일으킨 겁니다. 

 

그 이유를 이해하려면 '삼두정치'를 알아야 합니다. 삼두, 말 그대로 머리가 3개인 정치라는 뜻입니다.

 

당시 로마를 통치했던 3명의 인물 

 

1) 율리우스 카이사르

2) 폼페이우스

3) 크라수스

 

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머리가 3개, 삼두정치인 거죠.

 

카이사르가 성공적으로 갈리아를 정복한 이후, 이들 3명은 평화롭게 협정을 맺고 제1차 삼두정치를 결성합니다. 이후 로마의 속주를 각자 배분하는데요, 카이사르는 자신이 정복한 갈리아를, 폼페이우스는 히스파니아(스페인), 크라수스는 시리아를 받습니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자신이 갈리아로 떠나 있는 동안 일종의 안전장치로 자신의 딸 율리아를 폼페이우스와 결혼시킵니다. 즉 정치적으로 삼두정치 동맹을 더욱 단단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상 사건은 갑작스레 일어나는 법입니다. 크라수스는 시리아에서 전쟁을 치르다 죽었고, 율리아 역시 폼페이우스의 아기를 출산하던 중 사망합니다. 이로 인해 삼두 정치는 2개의 머리밖에 남지 않았고, 두 머리 사이의 연결은 거의 끊어지기 직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카이사르와 멀어진 폼페이우스에게 원로원이 접근합니다. 당시 로마 원로원은 우리나라의 국회를 생각하면 됩니다. 국회의원들이 있는 곳이 원로원이었죠. 그런데 이 원로원 의원들은 당시 삼두정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랬겠죠? 로마는 원로원 모두가 논의하여 통치하는 공화정이 근본인데, 삼두정치가 등장하면서 반 독재스러운 느낌으로 변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더 조종하기 쉬울 것 같은 폼페이우스에게 접근해서 그를 설득하고, 결국 폼페이우스는 원로원과 연합하여 카이사르의 권력을 빼앗으려 시도합니다.

 

그에게 1차 삼두정치 때 받았던 갈리아 총독의 임기가 끝났음을 선포하고, 군대를 해산시키고 그저 한 '로마 시민'의 상태로 로마로 돌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이 왜 문제였냐면, 로마는 '법'이 굉장히 중요한 국가였습니다. 실제로 당시에도 법정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변호사와 기소자, 배심원이 존재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원로원은 폼페이우스의 손을 잡고 카이사르를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리아 총독의 상태에 있는 카이사르는, '기소'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임기 중에는 면책 특권, 불체포 특권이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원로원과 폼페이우스는 우선 카이사르에게서 갈리아 총독의 지위를 빼앗고 일반 시민으로 격하시켜, 온갖 기소를 함으로써 그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그의 권력을 완전히 빼앗으려 결심한 것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로마는 법적 절차를 굉장히 중시하는 국가여서 없던 혐의라도 뒤집어씌워서 일단 법적으로 인정되어 버린다면, 카이사르의 지위는 끝도 없이 실추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죠.

 

자, 지금까지 내용을 이해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당한 조치에 반발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합니다. 이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내전'을 치르고, 결과적으로 카이사르는 승리합니다. 이후 그는 유일한 '독재관'의 위치에 올라 로마를 통치합니다.

 

3.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사실 전 이번 대목이 카이사르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로마는 원로원이라는 마치 우리나라 국회 같은 기구가 통치하는 공화정이라는 정치 시스템으로 오랜 시간 운영되어 왔습니다. 이는 고대 시대에 대부분 왕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졌음을 생각해보면 놀랍도록 민주적인 제도였죠.

 

분명히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하여 더 좋은 결론을 내고, 최고 통치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여러 훌륭한 정치가들이 등장할 수 있는 등 여러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카이사르가 살던 당시의 로마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는 아까 말했듯 카이사르의 정복으로 갈리아, 게르마니아, 브리타니아가 새롭게 영토에 추가되었습니다. 기존에는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시리아, 그리스 등을 지배하고 있었죠. 이렇게 되면 당시로서는 거의 유럽 전역을 지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광활한 지역을 통치해야 하는 로마로서는, 공화정 정치는 그 속도가 너무 느렸습니다. 여러 사람이 토론해서 결정을 내리다 보니 아무래도 왕이 결정을 내리는 군주정보다 결정의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죠. 또한 의견이 지나치게 분산되어, 강력한 중앙 집권적 맹주 국가로서 중심을 잡아주지 못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 현실을 정확히 간파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의 통찰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그래서 그는 루비콘 강을 건넘으로써 낡은 원로원 체제에 처음으로 저항의 깃발을 들었고, 이후에 독재관이 됨으로써 훗날 로마 황제, 즉 로마 제정이 등장하는데 주춧돌을 쌓습니다. (독재관은 원로원의 최고 통치자 1명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래는 전쟁 같은 국가 비상사태에서만 주어지는 직책인데, 카이사르는 '종신 독재관' 지위를 받아 사실상 죽을 때까지 독재관 지위를 유지함으로써 황제와 같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또한 그는 독재관이 되어 중앙 집권 체제를 로마에 확실히 이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로원의 권한을 줄이고, 권력을 독재관 자신에게 집중하여 권력 체제를 단순화했습니다. 현대로 치면 입법부의 권한을 줄이고 행정부의 권한을 늘린 겁니다. 당연히 행정부는 더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겠죠?

 

그리고 로마는 전 유럽의 제1 도시였던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살았고 빈곤층의 수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카이사르는 이들 빈곤층의 부채를 탕감하여 우선 사회 불안 요소를 줄였습니다.

 

또한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로마는 당분간 전쟁을 치를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민족 내에서 치고받고 싸우고, 이전에도 전쟁이 많았던 터라 갑자기 실직 상태가 되어버린 전직 군인들은 많았죠. 이들을 어떻게 하지 않는다면 군사 봉기가 일어날 것은 뻔했습니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이러한 재향 군인들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법률을 시행합니다. 특히 군인들에게 속주 땅을 나눠주고 속주에서 새로 결혼해서 정착하게 함으로써, 속주를 진정으로 '로마화'시킵니다. 즉 거대한 로마제국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우선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같은 목적으로 카이사르는 속주민 출신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널리 베풉니다. 이는 보수적인 원로원 의원들이 '로마의 전통'에 어긋난다며 극렬히 반대하던 것이었죠. 그렇지만 여기선 원로원 의원들이 틀렸었습니다. 속주민들에게 시민권을 줌으로써 그들은 진정한 로마 시민으로 동화되었고, 효과적으로 로마 제국 아래에 편입되었습니다.

 

이렇듯 카이사르는 독재관이 되었다고 여느 왕들처럼 흥청망청 권력놀음에 빠진 것이 아니라, '중앙 집권 제국'으로서의 틀을 공고히 닦았습니다. 로마 제국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카이사르의 양아들인)가 로마 제국 황제로서 순탄히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카이사르의 공이 굉장히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은 간단히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부터, 카이사르의 중요 업적 3가지를 알아봤습니다. 가장 위대한 로마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삶으로부터 많은 인사이트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2편에서는 카이사르 개인으로서는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갖고 있던 천재였는지 개인적 업적부터,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명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특히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와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명언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2편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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